글쓰기

피눈물을 마시는 새 (라섹후기)

퀘이' 2020. 6. 8. 09:04

나는 참 멍청하고 용감하다. 멍청해서 용감하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내 시력은 -3.25에 각막두께는 488mm 였다. 두께가 얇기 때문에 의사는 라식보다 라섹을 권장했다.

이때까지는 내 생각에도 라식을 했다가 혹시 각막 뚜껑이 덜렁거리다가 열리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니까 라섹이 더 나은 선택인 것 같았다.    

나름대로 조사를 하기도 했다. (라식이나 라섹 수술을 했던 친구들에게 느낌과 경과를 물어보고 다니는게 고작이었지만..)

라섹 후기는 대부분 덤덤한 반응이었다. "눈이 시려서 잘 뜰 수가 없었다" 든가 "하루정도 엄청 아팠지만 그 이후로는 괜찮아졌다" 든가.

대체적으로 수술 후 만족도가 높았고, 아픔에 대해서도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정도 길래 '나도 하루 이틀 아프다가 괜찮아지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간과했다.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부위와 정도가 다 다르며, 고통의 기억을 쉽게 잊는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내 경험은 끔찍한 것이었다. 그 고통스런 기간을 잘 기억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쳤었다.

정신적 고통을 제외하고 물리적 통증으로만 놓고 생각했을 때, 이 통증의 수치를 1(적은고통) ~ 10 (극심한 고통)까지의 숫자로 표현하면 9 정도의 통증이었다.

즉 31년을 살면서 경험한 최초, 최악의 아픔이었다.

인플루엔자에 걸려서 39도의 고열에 들끓었을 때도, 원인불명의 복합성 큰창자염으로 입원했을 때도, 6 정도의 고통이었는데.

마취가 풀린 후부터는 (마취상태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바늘이 약 100개 정도 눈알에 꼽혀있는 듯한 기분이었고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는 괴상한 상황이었다.
    
어두운 방안을 네발로 기어 다니며 벽에 머리를 처박았으나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성을 좀 잃었던 것 같다.)

고통을 느낄 때 '나'라는 생물에게 판단과 논리는 없었다. 만약 악마가 고통을 멎게 해 줄 테니 영혼을 팔라고 하면 난 당장 팔았을 것이다.

그냥 두 눈을 뽑아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눈 주위와 머리, 온몸이 뜨거웠고 영원히 그 어둠에 갇힐 것 같이 두려워서 이성적일 상황이 아니었다.

약에 취해 있고 싶었으나 처방받아온 진통제는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난 집에 있던 수면제를 한알 같이 먹었다.

그러나 수면제를 먹었어도 통증 때문에 잠들 수가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난 2알을 바로 더 먹고 3알을 복용한 상태에서 간신히 선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또 지독한 고통.. 수술이 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을 견딜 수 없는 나는 입원을 한다거나, 구급차를 부른다는 생각조차 못한 채 밥도 안 먹고 다시 진통제와 수면제를 먹었다. 

내가 가까스로 정신이 들었을 때, 3일이 지나 있었으며 수면제 한통을 모두 먹어서 남은 게 전혀 없었고, 눈약도 남은게 하나도 없었고,

귀나 머리카락엔 눈물이 범벅이었으며, 그것을 닦아내느라 사용한 티슈들만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수술 전에 피를 빼서 원심분리기로 혈청을 만들어주며 눈에 넣으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피눈물을 넣는 셈이다.

사랑니를 뺀 정도의 아픔이겠지~ 하며 가볍게 생각했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필자는 3개의 사랑니를 드릴로 깨서 봉합했지만 별로 괴롭진 않았다.)

정신이 든 나는 나에게, 또 병원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시력교정이 이 정도의 아픔과 맞바꿀 만큼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경계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개개인의 차이가 몹시 큰 것 같다.

제대로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의 경우 나처럼 징그럽게 앓아누웠다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개인별로 신경자극에 대해 민감한 부위가 다르고, 신경세포 양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난 양파를 썰때에도 남들보다 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못 견뎌해서 물안경을 쓰고 양파를 썰곤 했는데 혹시 내 몸은 눈 주위에 신경세포가 모여있는 것이 아닐까?

전문지식을 모르니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다. 왜 나는 좀 더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시스템적인 결함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시력교정 수술을 했던 병원이 이런 아픔에 경우에 대해 미리 충분한 고지를 했다거나 입원을 권장했다면 어땠을까?

일단 입원하고 수술을 한 후, 경과가 몹시 좋은 사람의 경우 퇴원을 하고 나처럼 상태가 좋지 못한 환자의 경우에는 혈관을 통한 진통제의 투입과 포도당 공급 등의 적절한 의료조치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그 정도만 해결됐어도 수면제 한통을 다 먹는다거나 고통 속에서 이성을 잃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생각엔 모든 라섹 수술은 백내장 수술과 똑같이 입원한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롭지 않다고 해도 암을 유발하는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보다 마취제나 진통제를 투여받는 쪽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입원을 장려하지 않는 것은 간단한 수술로만 인식시키고 많은 이들이 수술을 선택하게 해서 돈을 벌려고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본주의에서 돈을 벌기 위해 정보제공을 하지 않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적어도 의료분야에서 만큼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적어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이물감이 있고, 조금 아프실 수 있어요" 같은 말로 끝내고 수술을 유도하기보다 나에게 적합한 의료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병원의 프로의식이 아닌가!

 


치아교정하면서도 이런 희대의 고문기구에 대해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실제로 인간에게 적용시킨 소시오패스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었다.

시력교정을 위해 각막을 레이저로 깎아내면 된다고 생각할 순 있어도 그걸 실제로 인간에게 적용시킨 사람도 정상적인 공감능력이 있는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양악수술 같은 무시무시한 수술도 "턱이 나왔어? 그럼 턱 양쪽 가운데 뼈를 잘라서 없애고 나머지를 이어 붙여" 같은 단순한 발상을 실제로 적용시킨 마교의 교주가 있고,

그 교주가 돈을 많이 버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괴상한 세상 속에서 웃으며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의사라는 직업은 무서운 직업이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을 프로의식으로 요구하는 직업이라니. 사람을 얼마큼 동물로만 바라봐야 할 수 있는 직업인 걸까?

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할 정도의 아픔의 단계, 사술 같은 행위들은 말도 안 되게 경미한 수준의 단어들로 포장되어 있다.

난 과거로 돌아가면 라섹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 재미없는 글을 보는 이가 있고 그래도 시력을 교정하고 싶다면 꼭! 입원을 해서 내가 못 받은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기를 바란다.

 

http://www.bookk.co.kr/book/view/34166

 

감성적이라 힘든 그대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하며 배부르지만 불행하고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며,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이해를 못 하겠��

www.book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