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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9.05.29 매몰비용과 미련

퀘이' 2020. 6. 9. 22:28

오늘 회사에서 진행하는 '도예 일일체험'에 참여했다. 수업은 약간의 철학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있었다.

자기 자신의 싫은 모습을 접시 위에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접시를 깨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개운한 기분을 느끼자는 취지였다.

멀쩡한 접시를 깨뜨려야 하다니.. 개운한 기분보다는 자원의 낭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싫은 모습에 대해 써야 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날 좋아하지도 않지만 딱히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작게는 물건이나 투자비 등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크게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주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는데, 옷이나 신발은 몸에 잘 맞지 않는 빈도가 높아서 절약은커녕 오히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즉시 반품하면 매몰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겠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시기를 자주 놓친다. 얼마 전에도 맞지 않는 신발을 사놓고 신발장 한편에 방치하다가 아까워서 억지로 신었었다.

그러다가 발에 피부가 벗겨지며 피가 났고, 다시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뒀다. 그렇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결국엔 헌 옷 수거함에 버려졌다.

난 주식투자를 할 인물은 못 되는 것 같다. 물건을 잘 못 사서 발생한 매몰비용에 대해서도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데, 주식투자를 잘 못해서 돈을 왕창 까먹는다면 얼마나 아까워할까?

분명 팔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결국 더 큰 손해를 떠안게 될 것 같다.

'만약 그 주식을 사지 않고 다른 주식을 샀었다면 얼마를 벌었을까?'라는 헛된 생각을 반복하며 더욱더 큰 집착과 미련을 보일 것 같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매몰비용에 대해 쉽게 잊지를 못해서 지금도 많은 후회 속에서 살고 있다.

남자 보는 눈이 형편없던 나는 예전에 잠시 사기꾼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사는 곳과 직업, 연봉, 자산, 학위, 가족 등 모든 것에 대해 거짓으로 일관했었다.

사실관계를 잘 몰랐던 그 당시엔 많은 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잘 못 된 선택을 한 스스로에 대해 쉽게 인정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을 처음 만나봐서 그런지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 몰라서 여간 골치가 아팠다.

어느 정도 확신이 들어 헤어지자고 말했는데, '만났던 시간'이라는 비용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를 만났던 몇 달이라는 시간은 헤어짐에 있어서 전혀 고려될 사항이 아니었는데, 그런 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신기할 노릇이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훨씬 더 만족도 높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 중에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간이다. (여기서 시간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한정된 자원을 말한다)

돈도 소중한 자원이긴 하지만, 시간 안에 포함된 자원의 개념이라 시간보다는 하위 자산에 속하는 것 같다.

시간이 있으면 돈은 조금씩이라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성격의 동성친구와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나가다가 정리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몹시 여리고 예민한 성격으로 그녀의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우리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많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오랫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다.

함께한 긴 시간이라는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잊고 결단을 내려야 더 이상의 무의미한 자원의 소비를 막을 텐데, 그때의 나는 경제성 없는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추진하는 지자체와 똑같았다.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렸을 때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접시를 깨는 행위가 그것을 알려준 것은 아니었고, 그저 기억나게 해줬다.

도예가가 무엇을 버리고 싶냐고 물었을 때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뭐라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괜스레 얼굴이 빨개지고 쑥스러웠다.

그 접시처럼 쉽게 깨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 그것은 아마도 미래에도 쉽게 깨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http://www.bookk.co.kr/book/view/34166

 

감성적이라 힘든 그대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하며 배부르지만 불행하고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며,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이해를 못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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