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3 생물 관찰일기
남편의 동료 W님은 처음에 청소년기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준 성체 5마리를 주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4마리는 화려한 꼬리와 문양을 자랑하는 수컷이 되었고 단 1마리만 못생긴 암컷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구피는 성장하면 암 수 구별이 엄청 쉽다.) 문제는 그 4마리의 수컷들이 모두 단 한 마리의 암컷을 따라다니는 데 있었다. 구피는 수컷이 암컷을 미친 듯이 따라다니는 특징이 있고, 모두 번식에 미쳐있다. '못생긴 암컷 한 마리는 여왕이 된 것 같아서 좋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며칠 정도 지나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암컷은 4마리의 구애 활동에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고 스트레스로 눈알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한 두 마리의 수컷이 쉬고 있는 시간에도 다른 수컷들이 치근대고 있어서 암컷은 쉴 틈 없이 도망 다녀야 했고 급기야 작은 수컷에게는 공격성을 보였다. Tv에서는 솔로지옥인가 뭔가 하는 프로가 나오고 있었고 어항을 관찰하는 내 심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마찬가지로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남편은 W님에게 수컷이 4마리였다며 구원을 요청했고 W님은 암컷을 더 보내주셨다. 당장 사건을 해결한 기분이 들어 기뻤지만 곧 과밀항의 걱정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수백 마리의 새끼를 돌보게 될 것만 같아서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폭번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아주 작은 치어 한 마리가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그 치어를 잡아다가 부화통으로 옮겨주었다. 치어는 난황을 달고 태어나는데 그 난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성체들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라고 한다. 부화통에 옮기고 어항을 뚫어지게 관찰했지만 다른 치어가 보이지 않았다. '한 마리만 남기고 이미 다 잡아먹혔나?'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암컷들의 배는 별로 줄어들어 있지 않아서 가장 유력한 임신한 암컷을 분리하고 대기했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록 그 암컷은 새끼를 낳지 않았다. 좁은 곳에 계속 갇혀있는 게 불쌍해서 풀어줬고 그 이후로도 치어는 발견되지 않았다. 치어 한 마리는 너무나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남았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났다. 또 치어가 3마리 정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치어를 잡아 부화통에 넣었다. (치어를 잡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
어떤 암컷이 새끼를 낳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초산인데다 한 번에 와르르 나오지 않아 타이밍을 도통 모르겠다. 모든 암컷을 부화통에 넣었더니 좁아서 그런지 난리를 쳤다. 이 방법은 조금 아닌 것 같아 다시 풀어줬다. 그냥 보이는 치어를 잡아서 부화통에 넣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일인데 그 와중에 치어가 다쳐 죽기도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옮겨 넣기를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구별도 못하는 나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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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가 있으면 이끼를 먹어서 자동으로 어항을 청소해 준다고 해서 생이 새우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그러나 배송 오다가 스티로폼 박스가 깨졌는지 어쨌는지, 일반 상자에 대충 담겨왔다. 다른 부품 산 것도 분실되고 없었고 새우 봉달의 온도는 15도가 안됐다.. 물 맞댐을 해줬지만 대부분의 새우는 용궁으로 떠났다. 업체 측에서 다른 새우를 보내줬지만 알록달록한 색깔의 죽은 새우를 건져내는 일은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남았다.
새우와 구피는 합사가 가능하다고 들었기에 함께 키우고자 했는데, 자연의 세계에서 구피는 덩치도 크고 깡패였다. 최약체인 새우는 구피의 장난스러운 입질에도 쉽게 죽어버렸고, 구석으로만 피해 다니게 되었다. 새우를 괴롭히는 구피를 면봉으로 때려주고 싶었지만 재빠른 구피를 때려주기엔 내가 너무 느렸다. 또 잘 못하다간 구피가 죽을 테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릴게 틀림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어항을 하나 더 사서 두 종류를 분리해 줬다. 구피가 있을 땐 구석을 기어 다니던 새우가 가끔씩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을 때는 어항을 나누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우와 구피는 합사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지금은 생이 새우 어항과 구피 어항 두 개를 운영 중인데 생이 새우 어항은 수초가 무성해져 새우가 어디 있는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구피 어항은 부화통에 치어 4마리가 비실거리며 살아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