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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의 고백

퀘이' 2020. 6. 5. 10:34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만의 비밀 장소인 자수정의 계곡에서 목욕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곳은 있는 듯 없는듯한 약간의 위험성이 나를 흥분시키며 뱀이 내 몸을 휘감는듯한 무척이나 특별한 느낌을 주거든.
비밀스러운 취미라는 건 새로 산 장난감 마냥 자극적이고 일나가기 십 분 전 수면처럼 달콤했는데, 어느 날 그 일이 터지고야 만 거야.

"네년의 옷은 내가 갖고 있으니 여기서 미친년 취급 당하며 돌을 맞기 싫다면 나를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걸?"

그래.. 어떤 남자 한 명이 잠복하고 있다가 내 옷을 훔쳐 간 것도 모자라 내 몸도 농락하기 위해 협박까지 했던 거야.
사실 옷 없는 선녀는 미친년과 다를 바가 없지.. 마력을 빼앗긴 마법사가 그냥 흰머리 할아버지로 전락하듯 말이야.

해커가 내 은행 계좌에서 전 재산을 빼간 걸 알게 된  망연자실한 것도 잠시, 자식놈을 누군가 유괴한 것 마냥 내 가슴은 벌벌 떨렸지.
솔직히 말해 내가 느낀 불안한 욕망이 이렇게 참담한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 예측한 건 아니었거든..
내 미래는 순식간에 꾸깃꾸깃 쓰레기통에 처넣은 종이 같은 꼴이 된 거지.
어쨌든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나는 그 옷을 다시 손에 넣을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어.

 

그 남잔 소도둑 같은 모양새를 하고 독바늘같이 따가운 얼굴로 내 온몸을 긁어대고 지렁이 같은 열 손가락을  가슴 위에 구물대며 탐닉했지.

...빌어먹을 놈.

그 남자가 일하러 간다며 나갈 때마다  내 옷을 찾아 온 집안을 다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
분명 어딘가에 신줏단지 모시듯이 잘도 접어서 파묻어 놓았을 거야.
그날부터 나는 내 분노와 증오 등의 감정을 철저히 숨긴 채 그에게 온갖 알랑방귀를 끼며 접근했어.
약삭빠른 데다가 욕심도 많은 놈이라 쉽게 마음을 뺏긴 힘들 것 같더라고.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르는 날이면 제법 넘어오는가 하다가도 술이 깨면 멀쩡한 얼굴로 절대로 내 옷이 있는 장소는 말하지 않았지.

 

내 생각엔 아마 이쯤부턴 내 속마음도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자식, 솔직히 바보는 아니거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온갖 애교를 떠는지도 그렇고. 그 남자도 약간의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지..
내 자궁은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자동 공장처럼 마음대로 자식놈을 생산해대고 있었어.

 

하지만 자식놈을 낳아놓고 보니 저 남자의 새끼라 해도 귀엽고, 아비 되는 놈도 더는 전처럼 증오스럽고 징그럽게 밉진 않았어.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복수할 날만을 기다리던 내게 술 취한 그놈이 드디어 내 옷의 위치를 말해버린 거야!!
나는 자식도 잊은 채 한달음에 그 장소로 이동했고 찾자마자 한입에 꿀꺽 삼키듯 그 옷을 입어냈지.
힘을 되찾자마자 상황은 역전됐고 그 남자를 죽여버리리라 생각하고 그 집으로 돌아갔는데, 새까만 눈을 깜박이는 사슴 새끼 같은  자식 놈들이 아버지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는 거야.
난 그 남자를 죽이지도 못한 채 자식들을 안고 내 고향으로 돌아왔어.

그 후에 그 남잔 어떻게 되었냐고? 내가 알 게 뭐야! 그런 자존감도 없고 탐욕만 많은 쥐새끼 같은 인간을 내 눈앞에서 죽이지 못한 내가 미친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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