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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제도의 한계

퀘이' 2020. 6. 5. 13:17

내가 좋아하는 강신주 철학박사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이 당위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재산을 영혼의 동반자에게 합법적으로 전해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동거로는 부족한 점이 뭔가?'를 생각했는데, 크게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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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같이 쓰게된 재산을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둘째, 불필요한 주위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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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동거도 한 가지의 삶의 형태로 인정하고 제도적인 장치가 결혼과 비슷하게 잘 되어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우선 돈 합쳐서 전세 같은 걸로  들어가는 것부터 법적인 보호를 못 받고, 동거한 이후에 일해서 받은 수익금도 보장받질 못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동거를 한다면 그것이 결혼생활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사실 별로 없다.
그냥 주위 사람들을 납득 시켰는지 못 시켰는지 그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내 삶을 내가 사는데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음이 과연 중요할까??
결혼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금방 둘의 관계를 납득하고 인정을 한다. 받아들인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면 대부분은 납득하지 못하고 뭔가 불미스러운 것을 쳐다보듯이 눈살을 찌푸릴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나는 부모님에게 맞아 죽을 거다.)
굳이 신경 쓰이게 그러한 시선을 받아 가며 살 필요는 없기 때문에 그냥 결혼을 해버리는 쪽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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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문제점
첫째.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배우자의 가족, 친척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왜?)
둘째. 마치 무슨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존재하는 듯이 말과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 (왜?)
셋째. 나의 배우자가 가족이나 친척들 앞에서 바라는 게 많아진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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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를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다. 그래서 친구가 엄청 적다.
짧은 인생을 사는데.. 말이 안 통하거나 허세 부리는 친구와 함께하느니 혼자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했다.
그런데 나의 가족이나 나의 친척도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냥 타의에 의해 선택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같이 있다고 해도 친척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며, 가족처럼 서로 유대를 가지고 고쳐나가야 할 대상이 아니었는데, 나는 이것을 헷갈렸던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 가족도 타의에 의한 결정이기에 굳이 연대를 갖고 부딪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도 많이 봤다.)
나는 가족들과 안 맞아서 싸우고 하면서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거나 유대를 가지며 컸는데, 친척도 가족처럼 서로 애정과 유대를 갖고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완전히 나의 실수다. 그냥 애정을 갖고 대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내가 이점을 햇갈렷기 때문에 어릴 때 안 맞는 친척이랑 싸운 적도 있다.

 

외삼촌이었는데 술을 좋아하고 좀 괴팍하기도 했고 위계질서 체제를 중요시했으며 자기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잘하는 평범한 타입이었다.
나는 이런 성격이랑은 완전히 안 맞는다. 물과 기름같이 안 맞는다. 그렇지만 외삼촌과의 관계가 틀어짐에 따라 감당해야 할 것이 많았다.
엄마에게 외삼촌은 소중한 동생이고 나는 소중한 딸인데 둘이 사이가 나쁘니 불편해했고 감정적으로 무척 슬퍼했다.
안 맞는 외삼촌과 결별하게 돼서 후련하고 기뻤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그로 인해 엄마와 나의 관계가 안 좋아지자 슬펐고,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것에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친척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사람이 아니기에 적당히 형식상으로만 상대하는 게 중요한데, 어려서 그걸 몰랐다.
배우자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나의 가족처럼 유대를 갖고 지내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우자의 부모님이 운 좋게 내가 선호하는 타입의 사람일 리가 없다.
(이런 타입의 사람이 아닌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훨씬 많으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사람은 이런 면에서 참 피곤하다... 적당히 웃고 형식상 상대하는 것을 극도로 못하며 그런 것을 보통보다도 싫어한다.
이런 나를 나도 알기 때문에 직장도 전문직으로 선택한 건데 결혼에서 또 발목이 잡힌다.

 

두 번째는 내가 워낙 잘 못하는 분야인데,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가면을 여러 개 쓴 상태로 프로 서비스 직종의 사람처럼 되는 것이다.
(영업이라든가 보험을 권유하는 게 잘 맞는 사람은 이것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이나 친척을 만났을 때에 하는 말과 행동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 분위기 좋게 이야기하는 학습이 잘 안 돼있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안 해야 하는지 전혀 감도 안 온다.
무슨 지침서 같은 책이 있으면 좀 사서 읽어보고 싶다.
나는 결혼을 위해 관심 없는 타입의 사람에게 신경을 쓰거나 상황을 빨리 파악하는 것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정말이지, 하기 싫다..

 

세 번째는 배우자의 태도에 관한 것인데, 연애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결혼을 함과 동시에는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와 같이 있을 때에는 (받아들여주고 있던 부분이) 갑자기 못 받아들이게 바뀔 수 있다.
자기 자신 혼자서는 날 이해해 주지만, 다른 가족과 친지 앞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처럼 변하기를 기대할 거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여자로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은 반드시 그러하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면을 마음에 들어 했더라도 상황에 따라 좋고 싫음을 드러내지 않고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 것까지 바라게 되는 것이다.

 

강신주 철학박사의 말대로 결혼은 그(혹은 그녀)의 가족이나 배경이 패키지로 딸려오는 게 문제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아무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아무런 간섭도 안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지원을 받고 간섭도 받는다거나 지원을 안 받고 간섭도 안 받는 게 아니라, 지원을 받고 간섭을 안 받는 경우, 지원을 안 받고 간섭을 받는 경우 등이 있고 지원을 못 받고 간섭을 받으며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 경우 등등, 이것들이 다 순전히 운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그 단순한 바람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http://www.bookk.co.kr/book/view/34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