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을 선택한 적 없이 태어났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꽤 큰 축복이자 권리이다.
만약 당신이 죽고자 한다면 그것을 말리는 것은 당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다. 다만 당신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내 권리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염치없고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힘에 부치는 일이니까.
이 글에서 개인의 "자유의 기준"에 맞는 '죽음' 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당신의 자유의 기준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나, 많은 사람의 자유의 기준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행동'이다.
자살은 기본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친다. 나 자신을 매개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아마도 완벽한 자유에 의한 자살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살아있는 것도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삶이란 서로 크거나 작은 민폐를 끼치고 있는 행위니까.
당신의 죽음으로 당신과 연계된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슬퍼할 권리를 침해하는 쪽이 훨씬 낫다. 다음 3가지 경우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단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 번째, 당신의 부모.
당신의 자살은 부모를 살해한 것보다 더 엄청난 악행이고 최악의 민폐이다.
사람은 살아서 숨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의학적인 기준의 살아있음을 적용할 수 없다. 사람마다 살아있기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필자의'살아있다'의 기준은 사고하고,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가능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유지 장치로 육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가 슬픔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간에 (무의식중에서 라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고, 부모는 생명 유지 장치를 낀 채 육체만 살아있는 상태로 남은 일생을 보내게 될 확률이 가장 높다. 이렇게 타인을 괴롭게 만드는 행동은 자유에 범위에 속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죽고 싶다면, 당신의 부모가 세월에 의해 먼저 죽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긴 인고의 시간이다.
두 번째, 친구라든가 연인.
부모 이외에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죽음은 역시 개인의 자유의 범위에 속하지 못한다. 당신은 죽기 위해 모든 친구를 철저히 끊어내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상대가 이해하는 이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별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며 개인마다 이별에 이해하는 방법이 다르다. 한명 한 명이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왜 더는 그 친구와 연락하고 싶지 않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이미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며 자유의 범위에서 벗어난 민폐를 끼치고 있긴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당신의 죽을 권리를 위해, 당신이 친구들에게 입힐 큰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친구들이 더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 시기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비로소 완료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역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므로, 당신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끈기 있게 과정을 수행하며 기다려야 한다.
세 번째, 당신의 팬.
당신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정리하는 일이다. 즉,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는 일이다. 이 경우 당신의 죽을 권리를 위해 타인의 사랑할 권리를 침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게 당신의 죽을 권리를 수행함으로써 생기는 엄청난 트라우마와 슬픔이라는 피해보다는 적은 피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팬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지속해서 실망하게 해서 오만 정이 다 떨어지게 하여야 한다. 팬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 끔찍이 싫고 진저리가 난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어째서 당신이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당신의 죽을 권리를 위해 행동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당신이 원하는 거리를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답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하지 않았어도 예의 있는 행동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과정을 다 완료했다면 이제야 당신은 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축하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의에 의한 죽음을 자연에 의한 사고사로 위장해야 한다. 모든 정리가 끝났다고 확신한다고 해도,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확신하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눈치채고 슬퍼할 수 있으므로 유서는 쓰지 말고, 재산은 하나도 정리하지 않는 쪽을 추천한다.
준비단계에서 미리미리 장기기증서에 사인이나 해두고, 자산은 보육원이나 기관에 환원한다고 해두는 게 좋지만, 이런 것은 당신의 자유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더 생각하면 된다.
당신은 어째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걸까?
http://www.bookk.co.kr/book/view/34166
감성적이라 힘든 그대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하며 배부르지만 불행하고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며,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이해를 못 하겠��
www.book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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