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리적 욕구 ------------------------------------------------------- 식욕. 성욕. 수면욕 (공기, 물, 주거지 원함)
2) 안전의 욕구 ------------------------------------------------------ 자신을 위기로부터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
3) 소속과 애정의 욕구 ------------------------------------------------ 타인과의 관계 , 집단에 귀속 ,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
4) 자기존중의 욕구 --------------------------------------------------- 자신감, 성취감, 지식, 독립심, 인정 욕. (인정 욕구가 충족되면 자신감 권위 권력 통제등이 생겨남)
5) 인지적 욕구 ------------------------------------------------------- 지식, 이해, 호기심, 탐험, 의미추구
6) 심미적 욕구 ------------------------------------------------------- 자연과 예술에서 질서 조화 미적 감각
7) 자아실현의 욕구 --------------------------------------------------- 자신의 발견. 잠재력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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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에 좋고 나쁘고의 개념은 없다. 그냥 사람이니까 이런 것들을 원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단지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개인별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욕구는 어디까지 내 의지로 컨트롤이 가능하고 어디서부터 불가능한 것일까?
욕구를 컨트롤하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것일까, 그렇지 못한 것일까?
난 왜, 무엇을 기준으로 욕구를 컨트롤하고 싶은 걸까?
내 인생에서 가장 상위단계에 두고 있는 목표는 (기준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이 기준을 실행하며 살고 싶은데 태어나자마자 벌써 실패했다.
나는 살아있는 이상 크고 작은 차이는 있어도 무조건 다른 사람들 (혹은 생명) 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어느 정도 잠정적으로 자식 때문에 받게 될 큰 민폐들에 동의를 하시고 날 낳으신 거라고 생각해서 괜찮다.
(동의를 하시고 낳은 건지 그냥 생겨서 할 수 없이 낳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1번의 욕구는 컨트롤이 불가능하다.
1번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의 나는 사고가 불가능하고 그 결핍만을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완전히 동물임을 절감한다.
생리적 욕구 중에 수면욕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내 기준인 '피해를 주지 않고' 행 할 수가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식욕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살아있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 난 살아있는 생명을 (경험에 비해 비교적 잘) 죽이며,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움직이는 것도 잘 먹는다.
내가 살기 위해 뭔가를 죽여야만 하는 시스탬이 썩 맘에들지 않는다.
하지만 살기위해 그 생명체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더라도 일부 혹은 전부를 훼손하지 않으면 나는 이내 굶어 죽는다.
이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것은 동물이 갖고 있는 한계이며 이것은 내 기준에 의해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늘 받아들이고 있는 일이다.
또 내 식욕이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3번에 욕구에 대해 필사적이던 내가 잘 떠오른다.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좀 서툴기 때문에 관계를 잘 못 맺었던 것 같은데, 결핍이 생겨나자 다른 부분으로 결핍을 채우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3번의 욕구를 여기가 안되면 저기서 충족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뿐이고 근본은 늘 같았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도 받아보며 방향을 바꾸게 되었는데,
상대방 혹은 집단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는 노력을 나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줘서 결핍을 채워버리는 방향으로 틀자는 주장이었다.
상대방이나 집단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욕구지만, 별로 받지 못한 불우한 친구들은 이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해보면 이는 3번의 욕구를 근본적으로 부정해버리는 무시무시한 방향성이긴 한데 시도해보니 꽤 할만했다. 가장 부작용이 적었다.
매슬로우라는 사람이 1번~4번 까지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으면 충족 동기가 강해지고 충족이 되어야 감소하는 욕구라 주장한다.
3번의 욕구는 -부분적으로, 아주 일부- 내 의지로 컨트롤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을 속일 수 있다.
4번의 욕구에 대해서도 내 기준과 상충하는 바가 조금 있다.
인정을 받고 싶다는 문제는 어쨌든 자기 자신의 평가보다 타인의 평가를 우선시하는 것에 근거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인정 욕구를 불특정 다수에게 갖게되면 굉장히 불행해 지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욕구를 가지면 그게 기준점이 되어 좋은 것도 같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나 자신을 기준으로 잡아버리는 것이다. 이것도 3번에서 했던 방법으로 어느 정도 나를 속일 수 있다.
상대방 혹은 집단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노력으로 치환하여 스스로 인정을 해서 결핍을 채워버리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도 좀 기괴한 방향성이긴 한데.. 일단 이렇게 되면 욕구는 어느 정도 채워지면서 타인의 평가를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자신의 평가기준이 타인의 평가기준보다 우선시된다고 할 때,
그 기준이 타인의 평가보다 낮으면 바보 같지만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고
그 기준이 타인의 평가보다 높으면 훌륭해 보이지만 불행한 완벽주의자가 된다.
그러므로 인정 욕을 타인에서 자신으로 옮겨온 사람의 경우에는 기준점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욕의 경우 내 기준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시행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서 지배당하는 것에 동의해야만 하는데
상대가 받아들인 동의의 범위가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고 여러 명 중 소수는 반드시 피해를 입는 결정을 해야만 하는 때가 있을 텐데, 그게 나의 기준을 약간 침해한다.
이런 편법을 쓰는 사람의 경우 권력욕구가 좀처럼 들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내 기준이 걸림돌이 된 걸까.
혹은 인정 욕구를 편법으로 충족시켜버려서, 전체적인 충족이 되지 않아 아직 발현되지 않은 것뿐인 걸까?
애당초 인정 욕구를 상대방이 아닌 내 기준에서 채워버린 내가 상대에게 새로이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좀 가혹한 일이다.
3~4번의 욕구는 개인마다 그 크기나 정도가 차이가 있는 걸까..??
식욕도 수면욕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듯이 소속감 욕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의 정도도 차이가 있는 것이겠지..??
5,6,7번의 경우에는 메타 욕구라고 용어도 있는데, 충족돼서 동기가 감소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충족을 위해 강한 동기가 계속 발생한다고 한다.
이 욕구가 뭔지 명확히 정의 못 하겠지만 내 기준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와도 상충되는 바가 없어서 자유롭게 시행해도 된다는 점이 맘에 든다.
그러니까, Shall we 메타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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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이라 힘든 그대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하며 배부르지만 불행하고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며,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이해를 못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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