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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9.07.08 벌레와 익숙함

by 퀘이' 2020. 6. 9.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요즘 세대와 맞지 않는 것인지 그냥 나와 맞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구더기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일 바에야 그냥 맹숭맹숭한 밥을 매일 먹는 것을 택할 것 같다.

애초에 서울 태생인 나는 벌레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다. "장수하늘소"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적인 하늘소"조차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물속에 산다는 물방개나 잠자리 유충 같은 것도 전혀 모른다. 서울 주택가엔 우물이나 냇가 같은 물이 고여있는 장소조차 없었다.

주위에 산과들이 있었던 사람에게는 좀 충격받을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사마귀는 태어나서 딱 한 번 봤다. 예상보다 굉장히 컸다.

메뚜기나 여치라면 본 적은 있지만 그것도 그리 자주 본 것은 아니었고, 곤충채집이라고 한다면 기껏해야 나비, 달팽이, 잠자리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방역작업을 철저히 하는 게 아닐까? 아마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친구들도 물론 비슷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언젠가 지방의 한 펜션에 여자애들끼리 다 같이 놀러 갔다가 팅커벨이라고 불리는 (긴 꼬리 산누에나방) 커다란 나방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모두가 기겁을 했다.

나는 그게 나방이 아니라 무슨 새가 들어온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나방의 사이즈가 엄지손톱 이상 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 같이 비명을 지르며 사색이 되어 흩어졌고 우리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은 곤충, 동식물을 막론하고 피라미드의 정상에 서있는 게 분명한데 우리의 전투력은 참으로 미개했다.

혐오가 아닌 공포감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나는 긴 집게를 들고 팅커벨을 잡으러 갔다.

그 나방은 반사 속도가 상당히 느려서 쉽사리 집게에 몸통을 잡혔는데, 기분 나쁜 촉감이 집게의 철을 타고 내 손까지 도달했다.

무슨 "찌지직" 하는 소리도 났던 것 같다. 이런 것에 엄청난 충격 받을 정도로 우리는 벌레에 대한 내성이라곤 없다

최근에 원예에 빠져 이런저런 식물을 돌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제 원예는 슬슬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분갈이를 해주려고 식물의 뿌리를 들었는데 그 안에서 지렁이가 나왔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봄에 원예용 상토(가장 일반적인 흙)를 사서 분갈이를 해줬었는데, 아마도 그때 흙 안에 지렁이의 알 같은 게 들어있었나 보다.

인터넷으로 조사해보니 여름이 지나고 흙을 사면 봉지 안에 흙의 온도가 무척 뜨거워져서 지렁이나 지렁이 알 같은 게 모두 삶아져서 죽고,

겨울에 흙을 사면 온도가 너무 차가우니 지렁이, 지렁이 알은 모두 동사해서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봄에 흙을 사서 분갈이를 하면 축축한 화분 속에서 지렁이가 살아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렁이는 말하자면 흙에 좋은 '익충'이다. 지렁이 분변토를 따로 팔 정도로 지렁이 똥은 흙을 비옥하게 해 주고 통기성이 좋게 만들어준다.

다만 그 지렁이가 익충이든 해충이든 아무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나에게 지렁이는 그냥 징그럽다. (으으...!! 구물 구물거려...)

예전에 아빠와 함께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아빠는 미끼로 갯지렁이를 사 왔다.

아빠는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에게 "지렁이를 꽉 쥐면 입을 쩍 벌리는데, 입안에 낚싯바늘을 꿰면 잘 들어간단다"라며 끔찍한 방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낚시를 몹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징그럽기 짝이 없는 갯지렁이를 만져야 했다. 갯지렁이는 일반 지렁이보다 10배는 더 징그럽게 생겼었다.

어설픈 솜씨로 낚싯바늘에 지렁이를 꿰려다가 오히려 갯지렁이에게 손가락을 물려서 피가 났고, 그 이후로 다시는 아빠의 낚시를 따라가지 않았다.

지렁이 때문에 낚시도 포기했는데 이제 원예도 포기하게 생겼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도 아직도 이렇게나 지렁이가 무섭다.

곤충이 사이즈가 작아서 망정이지, 훨씬 더 컸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었을 것 같다.

곤충이라든가 절지동물은 포유류인 우리와 초기부터 너무나 길을 달리했고, 외부로부터의 침입보다 기생 같은 내부로의 침입에 특화되어 있어 더욱 두렵다.

사람을 가장 많이 살해하는 생물 1위는 모기다. 모기는 외부에서 공격하지만 역시나 내부로 바이러스를 넣어 질병으로 우리의 신체를 파괴한다.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봐왔다면 익충과 해충의 구별이 빠를 테고 정보가 많은 만큼 두려움이 적었을 테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고 이제 와서 배워도 역시 전혀 적응이 안 된다.

영원히 한적한 시골의 전원주택에서는 적응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 벌레의 공포를 극복할 방법이 뭐 없을까?

 

http://www.bookk.co.kr/book/view/34166

 

감성적이라 힘든 그대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하며 배부르지만 불행하고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며,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이해를 못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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