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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근력 운동

by 퀘이' 2020. 6. 8.

대퇴구 슬굴곡 동에 사는 봉공근 씨(, 37)와 같은 동네에 사는 장경인 씨(, 33) 1년 정도 사귄 연인 사이다.

 

그들은 조금 전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다니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 아니 명확히 말하자면 오늘'' 헤어졌다.

 

사소한 견해 차이에도 서로 무섭게 헐뜯으며 욕지거리를 퍼붓다가 그마저도 모자랐는지 옷깃을 잡고 패대기치듯 밀쳐낸다. 공근 씨는 "다신 꼴도 보기 싫으니 헤어져!" 라고 퍼부었지만, 그에게 정말로 이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위기감 따윈 없었다.

 

둘의 이런 다툼은 심심풀이로 까먹는 땅콩 낱알 하나하나의 개수만큼이나 많았고, 헤어지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그들 싸움의 주된 원인은 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남들처럼 결혼하고 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짜증과 울분이 뒤엉켜 녹아있었다.

 

봉공근 씨는 울산 출신으로 군대를 갔다 오고 서울에 상경해서 일한 지는 13년이 지났다. 현재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 납품 업체 소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근 씨는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 근면함에 싹싹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키도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꽤 좋은 편이다. 고졸이었지만, 눈치도 빠르고 처세술도 상당해서 계약도 잘 따내오는, 한마디로 일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3년 전 회사를 관두고 혼자 창업을 했다가 대차게 말아 먹은 이후로 현재 결혼자금은커녕 빚만 산더미다.

 

장경인 씨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경리 직원이다. 20대 때는 백화점에서 서비스업으로 4년간 일하다가 스트레스성 위궤양과 우울증에 걸렸었다. 그 이후로 일을 관두고 부모님께 얹혀살며 재무 공부를 조금씩 해서 재작년에 경리로 직종을 바꿨는데, 일한 경력이 길지가 않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업이 어려웠다. 그렇게 취직한 작은 회사에서 1년 정도 일을 했고, 취직하면서 회사 옆에 얻은 월세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일도 제법 익숙해질 때쯤, 성실하게 일하는 시원한 인상의 공근 씨에게 자꾸만 눈이 갔고, 때마침 공근 씨가 "주말에 저랑 같이 영화라도 보러 가요" 하고 먼저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혼할 시기가 된 그들에게 주위 사람들의 '결혼은 언제 하느냐?' 는 압박과 ''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합쳐져 존중과 배려는 온 데 간데없이 사라졌고, 상대방 탓을 해가며 초라하게 좁아진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에 급급했다.

 

공근 씨는 자존심이 센 편이라 경인 씨가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빴다. 그녀가 왠지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괴로웠다.

 

경인 씨는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공근 씨가 조금이라도 강압적으로 몰아세우는 말을 하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무척 속이 상했다. 싫다고 확실히 표현하면 불같은 공근 씨가 또 화를 낼 것이고 더 크게 싸울까 봐 - 그리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잘 알 수도 없어서 - 입을 꼭 다물고 삐쳐있곤 했다.

 

그러면 공근 씨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더욱 강압적으로 말을 좀 들으라며 화를 냈고, 그 상태가 되면 경인 씨도 참고 참다가 같이 소리를 치며 날카롭게 대립하게 됐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싸움은 그들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들이 헤어지기에는 당장 먹고 사는 생활과 연관이 너무나도 컸다. 헤어지자고 소리친 바로 다음 날에도 회사에서 다시 얼굴을 마주 봐야 한다. 둘 다 겨우 잡은 일자리였고 적응도 한 상태라 회사를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둘 다 가혹한 현실 속에 혼자서는 너무나 외로웠다. 서로가 필요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배려와 존중을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상태였다.

 

이틀 후, 공근 씨는 헤어지자고 말한 일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경인 씨의 원룸 방을 찾아가 벨을 눌렀고 그의 손에는 치킨이 든 봉지가 들려 있었다. 경인 씨는 자존심 강한 공근 씨가 먼저 찾아온 것이 사과의 뜻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어준다.

 

둘은 치킨을 먹으면서 그만 좀 싸웠으면 좋겠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서로 바라봤다. 이윽고, 옷을 벗고 엉겨 붙어 몸이 진흙이 된 것처럼 질척질척하고 녹아내릴 섹스를 나눈다.

 

경인 씨는 끈적하게 달라붙은 몸보다 화해한 사실에, 서먹하고 불편하지 않을 내일에 더 안도하며 기쁨과 환희가 섞인 소리를 지른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던가? 둘은 서로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그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더욱 견고하게 사랑을 재확인한다.

 

불안이라는 자학의 땅을 마구 짓밟아 폐허가 된 마을을 재건하고 또 부수는 과정을 반복하며 둘의 관계는 쉽게 떨어지지 못할 만큼 더욱더 돈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을까? 그렇게 학대하며 견고해진 마을은 '회사'라는 상황의 틀이 깨지는 순간 혹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어이없이 사라질 신기루 같은 것임을.

 

- 헬스장에서 근육이 찢어지고 다시 붙는 변태적인 과정을 생각하며.

 

http://www.bookk.co.kr/book/view/34166

 

감성적이라 힘든 그대

우리는 풍족하고 편리하며 배부르지만 불행하고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다. 감성적인 사람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며,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을 이해를 못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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