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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독자의 인내심

by 퀘이' 2024. 12. 25.

요즘은 만화가 아닌 웹툰의 시대고, 회. 전. 빙(회귀 전생 빙의)의 양산형 시장이다. 이게 획일적이고 상업적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지만 읽어보면 다 꽤나 재미있다. 이런 웹툰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과거에 좋아했던 만화가 지금 시장에 나왔다면 그만큼 인기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희대의 명작이라는 드래곤볼. 주인공의 레벨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적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예전 만화라면 이런 시련이 기본적이었지만 요새 트렌드는 그렇지 않다. 분명 독자들 중에는 "뭐가 이렇게 셀이라는 악당 마음대로 진행돼? 짜증 나니까 하차" 또는 "프리저라는 애는 왜 이렇게 세고 주인공은 고전만 해? 짜증나! 하차!!" 이런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볼 스토리의 특성은 주인공이 죽을 때까지 맞다가 (가끔은 진짜 죽음) 마지막에 각성해서 겨우겨우 승리하기 때문에 희열 구간이 몹시 짧고 굵다.

또 다른 명작 베르세르크를 떠올려본다. 현재 상황에 맞게 웹툰 플랫폼 시장에서 회차가 나눠진 상태로 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 주인공의 삶은 늘 눈물 나게 힘들고 비참하며 그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인생에 행복함은 찾아볼 수 없다. 지독한 배신과 절망, 투지만이 가득하다. 그는 강하지만 그의 상대는 압도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라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주인공은 전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이런 음울한 설정을 요즘의 웹툰 독자들이 과연 선호할까? "뭐가 이렇게 어두워ᆢ 손이 잘 안가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힘든 전생의 삶은 스킵 해버리는 게 트렌드이니 가츠가 회귀해서 그리피스를 죽이고 시작해야 더 인기 있을 것 같다.

예전 시대가 지금보다 결코 더 여유로웠던 것도 아닌데 왜 지금 독자들은 인내심이 한계에 가까워져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웹툰이나 소설보다 유튜브 쇼츠나 넷플릭스 같은 OTT 영상물의 볼 것이 너무 다양해져서 그쪽에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남는 여유시간이 적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책인지 웹페이지인지, 어떤 플랫폼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도 작품에 본질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것이 무척 익숙해진 요즘이지만, 확실히 약한 주인공이 오랫동안 고생하던 만화들이 줬던 커다란 감동의 순간은 죽기 전까지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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