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번역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스마트 안경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언어의 장벽을 거의 없애버렸고, 조만간 본격적인 보급도 시작될 것 같다.
비자가 나온다는 전제만 있다면, 나도 어딘가 다른 나라로 나가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나라의 제1직업 은퇴 평균 나이는 49세라고 한다. 여자라면 그보다 더 빠를 가능성도 크다. 나는 45세까지만 3D 배경 제작자를 할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해외에서는 한국처럼 나이가 곧바로 커리어의 한계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라면 일을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신이 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되면 제1직업을 좀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답했다.
“언어 문제가 해결될 즈음이면, 우리 기술 자체가 더 쓸모없어질 거야. 그 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을 텐데, 굳이 외국인을 받아줄까?”
현실적이고, 꿈도 희망도 없는 대답이었다.
프로그래머인 그가 그래픽 제작자인 나보다 더 빨리 사라질 직업군에 속해 있어서 그렇게 냉소적인 건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곧 큰 차이는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숙연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미국 게임사에 취직해 외국인 노동자가 되는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봤다. 미국은 평균 연봉이 높지만 세금이 어마어마하다. 연방세에 주세, FICA까지 더해지면 수입의 30%는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집값은 판교 수준으로 비싸서 20억은 기본으로 넘고, 직장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으로 가도 12억 정도는 한다. 자동차세도 내야 하고, 주택 관리비만 월 80만 원 수준인 것 같다.
외식 물가는 비싸니 마트에서 장을 봐 직접 해먹어야 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버는 구조처럼 보여도 모으기는 어려운 생활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외국에서 일한다는 선택지가 지금보다 더 나은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가정은 꽤 낙관적인 상상에 가까웠다. 기업 환경에서 스마트 안경은 보안 문제로 금지될 가능성이 크고, 실시간 번역은 여행자에게나 유용한 기술로 남을지도 모른다.
언어의 장벽이 사라진다고 해서, 일자리의 장벽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실시간 번역의 시대에도 사라지는 건 일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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