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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1 내 고향 서울

by 퀘이' 2026. 3. 7.
내 고향은 서울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에는 마당도 없었고, 귀여운 강아지도 없었으며, 신선한 채소가 가득한 밭도 없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흔히 떠올리는 감성적이고 그럴싸한 추억과는 거리가 멀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곤 빼곡한 다가구 주택과 다가구 주택 사이의 좁은 담장길을 ‘마법의 지름길’이라 이름 붙이고 뛰어다닌 정도다. 그러다 그 길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어미 한 마리와 새끼 고양이들이었는데, 귀엽게 생긴 외모와 달리 사납고 늘 기분이 나빠 보였다. 친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동네에는 고양이가 워낙 많아 영역 싸움이 치열했고, 밤마다 “왜애앵!” 하는 울음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집집마다 ‘저놈의 도둑고양이들’이라며 욕을 해댔다. 마침 겨울이었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박스를 가져다 놓고, 장롱 속에서 꺼낸 내 옷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액체 손난로를 매일 하나씩 갈아주었다. 똑딱이를 누르면 액체가 하얗게 굳으며 열을 내고, 집에 가져와 뜨거운 물에 넣으면 다시 액체로 돌아오는 그 손난로였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순간, 새끼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동네 놀이터와 공터 사이에는 늘 달고나 할머니가 있었다. 오징어게임의 뽑기처럼 납작하게 눌러 별 모양을 찍어주는 방식은 아니었다. 돈을 내면 국자를 하나 주고,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려두고 설탕에 소다를 섞은 채 따뜻할 때 나무젓가락으로 찍어 먹는 방식이었다. 뜨겁지만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지금도 왜 굳혀서 뽑기로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달고나는 뜨거운 상태로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고모는 일본에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고모부는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사촌동생은 남자아이였는데, 늘 풍요로운 장난감과 게임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팩을 꽂아 하는 슈퍼패미컴, 닌텐도 게임보이, 변신하고 합체하는 로봇 장난감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개구리 얼굴 모양의 작은 반지다. 얼굴을 열면 음악과 함께 디지털 시계가 나왔고, 고장 한 번 없이 늘 작동했다. 너무 신기했다. 사촌동생의 장난감들은 대부분 일본 제품이었고, 정교함에서 내가 쓰던 싸구려 장난감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고모가 한가득 사 오던 마카다미아 초콜릿도 기억난다. 그건 평범한 가공 초콜릿과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서울의 겨울은 정말 혹독했다. 집에서는 늘 내복을 입고 있었고, 밖에 나갈 때는 그 위에 옷을 껴입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목도리, 장갑, 모자, 두꺼운 점퍼까지 모두 착용하면 몸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중무장을 해도 밖은 추웠다. 어느 날은 집에 오는 길에 강풍이 살을 에는 듯 불어왔고, 집에 도착해 볼이 빨개진 채 울었다.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났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이 자주 흘러나왔다.
나는 입이 짧은 아이였다. 부모님은 먹는 것에는 늘 진심이었다. 가난했지만 저녁 식사는 언제나 호화로웠다. 메인 요리 하나에 반찬이 서너 개 이상은 기본이었다. 닭도리탕, 고등어 김치찜, 소불고기, 냉동 삼겹살, 된장찌개, 김치찌개, 비빔밥, 소고기미역국, 백숙 같은 음식들이 자주 상에 올랐다. 식사 후에도 회를 썰어 먹거나 살아 있는 낙지와 소라, 노계닭, 족발 같은 것들을 먹곤 했다. 나는 왜 밥을 두 번 먹느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키 작고 외소한 딸이 늘 신경 쓰였던 아빠는 우유를 끓여 설탕을 잔뜩 타서 마시라고 권했다. 맛이 없어 도망 다니며 실랑이를 벌이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그렇게 입맛이 없던 내가 지금은 입맛이 너무 좋아져 살이 찌고 있다. 지방이 쌓여서인지, 날씨도 그때만큼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고급 닌텐도 게임기를 빌려 하기는 했지만, 문득문득 생각한다. 기왕이면 조금 더 따뜻한 시골에서 밭을 뛰어다니며 참외를 훔쳐 먹고, 해 질 녘까지 놀다 흙 묻은 발로 집에 들어가는 기억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서울의 유년은 나쁘지 않았다. 부족하지도 않았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다만 거기에는 늘 콘크리트와 골목, 학원과 추위가 있었다. 서정적이거나 포근한 장면 대신, 단단하고 차가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겨울이면 눈이 녹지 않던 골목, 나무 대신 간판이 가득하던 거리, 그리고 빨리 자라야 할 것만 같던 공기..
그래서인지 지금도 ‘고향의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라 하면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나는 서울에서 자란 아이답게, 조금 무심하고 조금 단단한 기억들을 품고 있다. 그것 역시 나를 만든 시간들이었고, 충분히 의미 있었다. 다만 시골처럼 오래 데워지는 온기보다는, 추위를 견디며 지나온 계절에 더 가까운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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