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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27 부모님의 해결책

by 퀘이' 2025. 8. 25.


사회초년생 때 나는 거의 몇 주 동안 집에 와서 울었다. 야근을 밤 10시까지 하고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면 나를 위한 시간은 1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소중한 시간에 내가 하는 일은 우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그 모습을 보셨다. 엄마는 놀라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군가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물음에 아니라고만 하자 엄마는 의아하게 여기며 왜 우는 거냐고 캐물었고 난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에게 딸이 운다고 말했고 아빠는 "힘들면 그만둬!"라고 말했다. 아빠는 자신 있게 "평생 밥은 먹여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했고 엄마는 "사람이 밥만 먹고사는 게 사는 거냐?"라고 반문했다. 두 분은 의견이 달라서 투닥거리고 있었다.

사실 내가 몇 주나 울었던 이유는 '자유와 헤어지는 느낌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책을 읽는 것이나, 단편애니를 보는 것, 게임을 하는 것, 그림을 그리던 일, 소설을 읽으며 누워서 과자를 먹는다거나 면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상들.. 나는 취미 부자였다. 일은 늘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집에 오면 내 자유시간은 없다시피 했다. 그 어떤 것도 즐길 수가 없었다. 처음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을 때도 그 정도로 몇 날 며칠을 울진 않았다. 왜냐하면 남자는 단 한 명이었고 내 취미와 일상은 수십 가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을 구구절절 부모님에게 하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웠다. 일 하느라 만화를 못 봐서 운다고 하면 너무나 어린애 같아서 비웃으실게 뻔했다. 돌이켜보니 당시의 나는 부모님에게 큰 혼란을 안겨 줬던 것 같다. 다 큰 딸이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도 매일 조용히 울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일하는 것을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아트 관련한 일이라 적성에도 나름대로 잘 맞았고 돈을 번다는 사실도 기뻤다. 하지만 내게 일이란 시간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서 마치 연인과 헤어지듯이 내가 사랑하던 행위들과 헤어지는 고통이 있었다. 몇 주 정도 실연의 아픔(?)을 겪으며 눈물로 지새울 때 엄마가 말했다. "혹시 남들보다 돈이 없어서 뭔가 속이 상해서 그렇다면 네 통장에 몇천만 원 정도 넣어주겠다"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엄마는 큰 오해를 하고 계신 게 분명했다. 갑자기 돈을 주겠다고 해서 당황했었다. 어쩔 수 없이 난 창피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속으로 작별하고 있고 그게 너무 슬프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너 지금 군대 가냐?"라고 하셨다. 군대를 가본 적은 없지만 만약 군대를 가면 딱 이런 기분일 거라고 답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울지 않았다. 회사에서 몹시 힘든 일이 있어도 단 한 번도 우는 일은 없었다. 그날 나는 내 자유와 완전히 헤어진 것 같았다.

부모님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들고 오셨었고 나는 그들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일이 못 견디게 힘들어서라던가 남보다 돈이 없는 것 같아서 슬픈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밥은 먹여주겠다는 아빠의 말이나 돈을 통장에 넣어주겠다던 엄마의 말도 내게는 무척 크게 위로가 됐다. 부모님은 각자 젊었을 적 그런 점이 힘드셨던 거다. 부모님의 20대 초반을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성격이 모두 달라서 늘 말이 안 통하는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름대로 고민하고 딸자식을 걱정하던 모습을 보고 '포기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식에게 중요한 건 어떤 말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그냥 '걱정해 주는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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