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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믿었던 장소들의 배신 이번 재난들로부터 강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우리들은 더 이상 순진하게 속아서는 안된다.사기를 두 번이나 당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차분하게 상황을 복기해 보자.2022년 8월 8일. 이름이 붙은 태풍도 뭣도 아닌 정말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비구름으로 인해 중부지방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첫 번째로 신림동 반지하에 살고 있던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반지하든 뭐든, 집이라는 '장소'이다.나에게 집은 따듯하고 지친 몸을 편안하게 누일 수 있는 유일하고 안락한 장소이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집은, 세상에 그보다 더 편한 곳이 없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다. 그 따듯함 때문에, 갑자기 사람이 죽는다는 엄청나고 끔찍한 재앙이 생길 공간이라고 의심하기.. 2024. 12. 25.
2022.08.13 서로를 포기하는 사랑 최근 언니와 형부가 조카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2박 3일간의 짧은 체류였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가는 우리 자매에게는 어릴 때처럼 어울려 놀 수 있는 특별하고 소중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언니네 가족이 다녀간 뒤 남편이 재밌는 말을 했다. 언니네 부부를 보니 '아! 우리 부부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이유는, 형부가 배려하거나 언니가 배려하는 것을 보면 서로 하고 싶은 뭔가를 못하게 하려는 게 전혀 없었다고, 자기는 형부처럼 처가에 와서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가자고 할 때까지 버티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형부의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처형이 친구 만나러 며칠씩 다닐 동안 덩그러니 처가에 혼자 남아 아이를 돌보고 있다거나, 처형이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와 새.. 2024. 12. 25.
2022.06.04 경상남도의 바다 남편의 고향에 왔다. 이곳의 바다는 깊고 푸르고, 조금 무섭고, 파도가 크게 출렁거리며 심술을 부리는 느낌이 마치 유약한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이곳 사람들의 성격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를 볼 수 있다는 유람선이 있길래 타봤는데 죽는 줄 알았다.잔잔한 물결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한강에 유람선과는 다르게 이곳의 유람선은 큰 파도에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렸고 2층 창문까지 바닷물이 몰아쳤다. 흡사 유원지의 놀이 기구를 연상케하는데, 1시간이 지나자 탑승한 손님들의 2/3 정도가 멀미를 시작했지만 고래 탐험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선장과 선원들은 마치 바이킹의 후예처럼 뿌리 깊은 뱃사람들 같았다. 배 안에서 아비규환이 일어나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3시간 동안이나 고래를 계속 찾아다녔다. 나는 서서 몸을 .. 2024. 12. 25.
2022.06.03 유행이 끝난 가부장 https://youtu.be/R4WGIJjN2F4 남편이 웬일로 이런 다큐를 보내줬다. 요즘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살아남지 못하고 외로움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기 때문에 그런 타입의 아버지는 거의 없는 시대인 것 같다. 수명에 대해서는 검색했던 적 있어서 알긴 했는데 ᆢ 자살률도 차이가 심하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시대의 변화에 맞춰가는 노력을 하는 거겠지.. 젊었을 적 꽤나 권위적이던 우리 아빠조차 집에 갈 때마다 늘 설거지를 전담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랑 사이는 좋지 않지만 이혼당하지 않고 잘 버텨내시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주 현명하진 못 했지만 많이 노력해서 조금씩은 달라지신 거겠지..화를 잘 내는 성격을 버릴수록, 고집스러운 주장을 꺾을수록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히 잘 .. 2024. 12. 25.
2022.05.15 아이와 대화 조카 녀석 (만 6세)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돌고래 헬륨풍선을 사주며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너무 속상해하거나 실망하지 말자"라고 말하던 나에게 아이는 "그런 슬픈 말은 그냥 하지 마"라고 말했다.슬픈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맞다.집에서 내가 휴대전화만 보고 있으니 아이는"이모!! 안아주고 예뻐해 줘!" 라고 요구했다. 처음 들어보는 황당한 요구지만 명확하고 솔직한 말에는 응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그런 마음을 올곧게 표현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떠올려보니, 내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 2024. 12. 25.
2022.03.24 오미크론 증상의 기록 오미크론은 감기 같다고, 코로나 종식을 위한 축복 같은 거라고 말하는 자들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다.내가 겪은 오미크론은 그렇게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으며, 증상은 인플루엔자에 걸렸을 때 보다 좀 더 심각했다.(백신 상황 나 : 화이자 2차 /남편 : 얀센. 모더나)인플루엔자는 고열이 특징이었고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어서 그 커다란 주사를 천천히 맞자마자 즉각 체온이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금세 컨디션이 돌아왔었다. 오미크론의 목에 칼이 꼽힌 것 같은 아픔에는 별다른 치료제를 투여받지도 못하고 자연치유를 기다려야 했으니 슬픈 일이다.인류의 과학력은 달에 놀러 다니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있는 것 같다.------------------------------------------.. 2024.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