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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0 소멸해야 하는 나라

by 퀘이' 2024. 12. 26.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소멸해버려야 맞는 것 같다.

왜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소멸하는 게 좋겠다는 자포자기한 소리를 지껄이게 된 것일까?

그것은 나의 친구 K로부터 느끼는 간접 체험의 결과가 암담하고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친구 K는 아이 두 명의 엄마이다.

내 눈에 그녀의 삶은 팍팍하다 못해 지옥과 같다.

우리는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이다. 그녀가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수십 가지이며 10년 넘게 기술을 갈고닦았다. 하지만 K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 특성상 프로젝트가 오픈하거나 드롭되면 좋든 싫든 퇴직하게 될 확률이 높다. 만일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다면 애 키우는 여자를 선호할 직장은 거의 전무하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 생활에선 야근이 많기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을 살거나 가정을 돌보지 못한다.

이는 부모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어쨌든 일상이 돌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보통 조부모들 중 누군가가 부모의 역할을 대행해 주게 된다. 이것이 가능하면 다행이지만 불가능하다면 부모 둘 중 한 명이 직장을 포기하고 독박 육아를 하게 된다. (한 명까지는 둘 다 포기하지 않기도 하지만 둘은 확실히 한 명은 포기해야만 일상이 온전히 돌아갈 것 같음)

그러면 육아와 가사의 피로도가 높고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달해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원망을 쏟아내게 되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상에 허덕이는 모습으로 삶이 이어진다.

나는 K를 보며 나 자신도 책임지기 어려운 실정에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낀다.

그리고 아이가 주는 행복과 아이가 주는 책임의 무게를 저울질하게 된다.

하지만 책임질 것이라고는 없는 지금도 삶은 불안하고, 노후는 대책이 없으며 부모님의 부양은 꿈도 못 꾼다.

나는 운이 좋은 편으로, 부모님에게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삶이 풍족하지도 못하다고 느끼며, 소비도 줄이며 절약하고 있고 남편과 둘 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중산층도 못된다고 느낀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고 운이 좋은 편인데도 삶이 이 정도 수준이면 잘 못 된 나라가 맞지 않을까?

나라는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지만 정부 정책이 고작 출산 독려 엉터리 춤이나 추고 있는 실정이라면 여태 이 정도까지 부흥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훌륭한 기업들과 성실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선진국 반열에도 오를 수 있었던 것뿐이다.

오히려 K는 어째서 아이를 두 명까지 낳았는지 의문이 들며 너무 안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의 시아버지는 그 집안의 장남이셨고 제사도 꾸준히 지내며 가문의 정통성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의 대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별다른 죄책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게 꼭 명맥을 유지해야 하는 대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이 있다면 가스라이팅이 분명하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며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감놔라 배놔라 한다면 그것은 다 헛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모두의 인식이 바뀌고, 국가도 기업도 생각이 달라지기까지 몇 십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까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나라가 조용히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며 덤덤히 같이 늙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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