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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8 미용실에서의 대화

by 퀘이' 2024. 12. 26.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헤어컷을 하고 있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나는 집 근처의 모든 미용실을 한 번씩 다 가보았다. (어느 곳은 너무 심각하게 머리를 망쳐놨었다ᆢ) 그리고 가성비가 높은 순위로 리스트 업을 했고 한 곳을 정한 후 거기만 간다. 늘 말 한마디 없이 자르고 나오는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그녀가 말을 많이 걸었다.

내용은 자식이 한 명 있는데 알레르기가 심해서 밀가루를 먹을 수 없기에 고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김밥만 먹이고 있는데 쌀가루 같은 것으로 돈가스를 할 방법이 없는지 내게 물은 것이다.

1년 이상 얼굴만 아는 사이였기에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자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적셔서 고기를 감싸 튀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라이스페이퍼를 생각지도 못했다며 굉장히 기뻐했다. 계란 물은 언제 묻힐지 물어봐서 "고기에 계란물을 묻히고 라이스페이퍼를 싸고, 빵가루 말고 쌀로 만든 작은 뻥튀기 같은 것을 달라붙게 만든다면 식감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는데 그녀는 나를 요리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요리랑 아무 상관 없는 인간인데ᆢ

그녀의 착각을 정정하는 것도 기쁨을 반감시킬 일이 될 것 같아서 이젠 어쩔 수 없이 뭐라도 아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도 그녀는 돈가스가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도 잘 모르고 있어서 나는 자신에 찬 얼굴로 돼지고기 등심 부위이며 등심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건강에 좋고 가격도 싸다고 말했다. 건강에 좋은데 왜 싸냐고 질문해서 "사람들이 선호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등심은 삼겹살이나 목살처럼 기름지지 않고 식감이 퍽퍽하니 인기 없는 것뿐, 아주 건강한 재료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경외심을 갖는 눈으로 나를 보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런 요리는 해본 적도 없고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밀가루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불편을 초래할지 처음으로 고민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는 것 자체가 꽤나 큰일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내 머리를 완벽하게 잘랐고 역시나 프로페셔널 하면서 가격은 무척 싸다. 요즘엔 회사에서 미쳐가고 있었는데 언젠가 제2의 직업으로 미용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대 출신이고 감각이나 손재주는 있는 편 같으니 시도해 볼 만하다. 제2의 직업 리스트에 적어둬야겠다.

어쨌든 다음에 갔을 때 그녀가 또 요리 얘기를 하면 어쩌나 싶다. 요리에 대한 내 얇은 지식이 바로 들통나면 적잖이 실망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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