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왜 알고 싶지도 않은 지식을 억지로 꾸역꾸역 배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언가 궁금하거나 의문이 생기면 그때 찾아보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60대에 궁금한 게 생겨서 공부를 했다고 해 보자. 그 지식은 앞으로 20년 정도밖에 못 쓰겠지. 그런데 같은 걸 10대에 배워 두면 70년은 활용할 수 있어. 어차피 배울 거라면 일찍 배워서 더 오래 써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겠니? 60살까지 모르고 산 시간은 인생에서 큰 손해가 되는 거잖아.”
언니의 말은 꽤 논리적이어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부하기 싫었던 나는 또 다른 반론을 펼쳤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실제 삶에서 과연 쓰이느냐는 것이었다. 암호 풀이 같은 문제들은 실용적이지 않고, 단지 등수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새삼 깨달았다. 내가 실용적이지 않다고 여겼던 지식들이 사실은 일상생활 속에서 엄청나게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예를 들어보자.
1. 수학
싸인, 코사인, 미분, 적분 같은 고등수학은 평생 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프로그래머 H와 T.A를 하고 있는 S는 “많이 쓰여! 필요해서 다시 공부해야 했어!”라고 입을 모았다.
2. 한자
한글만 쓰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과목이라 여겼지만, 친구 J는 “세상의 많은 단어가 한자를 바탕으로 조합돼 있어서, 모르면 책을 읽거나 대화할 때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H는 “중국어나 일본어도 한자 기반이라 활용 범위가 훨씬 넓다”고 덧붙였다.
3. 국어
문맹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는 누구나 읽고 쓰기 때문에 굳이 국어를 깊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 M은 “영어를 아무리 공부해도 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문해력 부족으로 다음 단계로 못 나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국어는 마치 패시브 스킬 같은 것이라 기본적으로 반드시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 철학
철학은 돈도 못 벌고 오히려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M은 “철학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학문이야.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 주어 AI에게 질문할 때도 더 체계적으로 묻고, 답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 시대에 오히려 철학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5. 역사
과거 이야기가 지금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H는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잘못된 길을 피하도록 가이드가 되어준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이야기한 모든 친구들이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가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차라리 어릴 때 했더라면 훨씬 더 능률이 좋았을 텐데”라며 후회하고 있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 나는 두 번째로 품었던 질문의 답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과목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큰 틀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연결고리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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